'신곡'의 저자 단테, 정치인이며 철학자였던 그가 한 평생 품고 살았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는 교회를 지나, 그의 생가, 18년 뒤에서야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었다는 베키오다리까지 단테의 흔적은 피렌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나는 '신곡'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인문학 강좌를 들을 때 한귀로 흘려들은 걸 제외하고는 아무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단테와 베아트리체라는 그들의 이름은 참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베르테르와 로테처럼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에서 인용되었던 이름들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
나는 이 낯선 이름들로 마음에 그림을 그리고 동경하였던 듯 싶다.
지금이야 참 부질없는 망상으로 넘기고 말 일이지만
나는 그런 때가 있었다.
9살이었던 단테의 눈에 비쳤을 베아트리체는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신곡의 모든 모태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어느 누구의 글이 생각난다.
그 옛 흔적의 길을 따르게 하는
피렌체는 아직 '사랑'의 진정이 숨쉬고 있을까?
두오모를 지나 우피치 미술관 가늘 길에 바로 그 단테가 다녔던 교회가 있다.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그 작은 교회
단테의 집-입장료를 내가 들어가야 했는데, 나는 그저 그를 현실의 인물이 아닌
내 어린 시절 동경의 인물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르노 강이 흐르고
그 위로 이층다리 형태의 '베키오 다리'
메디치가 사람들이 새로 사들인 피티 궁전과 원래 궁전이었던 베키오 궁전을
속인?들이 지나는 길이 아닌 자신들만이 지날 수 있게 이 이층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피치미술관에서 찍은 베키오다리
이렇게 지금의 미술관(옛궁전)이 다리로 건너편 이탈리아에서
제일 크다는 '피티'궁전으로 이어진다.
다리 양편으로 죽 이어지는 보석상가들
옛날에는 이곳에 정육점들이 있었다는데 이층으로 육로를 만든 메디치가 사람들이
이곳이 꼴상스럽다고 그들을 다 쫓아냈단다.
보석만 보고 어찌 살 수 있나...고기도 먹고 살아야지...!
암튼 이곳은 관광명소인지라 사람들이 보글보글대고 있었다.
보석상가들...가격보고 화들짝 놀라는 우리들
다리 중간쯤 기둥에 이 자물쇠들이 늘어지게 매달려 있었다.
어떤 연인이 또 하나의 자물쇠를 막 달아놓는 걸 보니
아마도 소원이라도 매날아 놓았나보다.
인파 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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