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切頭山).
우리 말로야 별 뜻 없는 산 이름처럼 들리지만 한자(漢字)를 풀이해보면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자르는 산'이라니… 무슨 곡절이 있길래 그토록 꿈자리 사나운 이름이 붙었을까.
서울에서 88도로나 강북
강변도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다 보면 강북쪽으로 당산철교와 맞닿아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는 원래 땅 모양이 누에 머리와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리던 곳이다. 지금이야 온갖 건물과 다리로 뒤덮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15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쌀과
어물과 채소를 싣고 서울로 올라오는 배가 정박하던 교통 중심지였고, 풍경이 뛰어나 많은 풍류객들과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며 시를 읊었던
명승지였다.
그랬던 잠두봉이 절두산이라는 비극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한국 천주교회사상 마지막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낳은 병인박해(1866년)를 기해서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두 차례 침입해 잠두봉 일대를 점령하는 사태(병인양요, 丙寅洋擾)가
일어난 후 조정은 이곳을 천주교인들을 처형하는 사형 집행터로 택하게 된다. 교통과 군사 요충지인 이곳이 서양세력에 의해 더럽혀진 것이 천주교인들
때문이니 천주교인들의 피로써 이곳의 오욕을 씻겠다는 뜻이었다.
그해 10월 황해도 사람 이의송(프란치스코) 일가족이 처음으로
순교한 이래 김증은·박영래·최수·김진구 등이 줄줄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잠두봉에서 순교했는지는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만여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그렇게 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처절한 죽음을 맞은 병인박해가 끝난 다음 이곳 이름은 잠두봉에서
절두산으로 바뀌었다.
지금이야 순교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바뀐 이름으로 미뤄 짐작만 할 뿐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피맺힌 절규와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앙을 지키겠다는 순교자들의 거룩한 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교회 대표 성지가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인 것이다.
순교자들의 절절한 숨결이 밴 절두산에 지금의 순교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지금부터 37년 전인 1967년의 일이다. '절두산
치명터를 확보하자'는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각계각층의 협조와 관심을 구하던 한국 천주교 순교자현양회가 1956년 마침내 절두산 순교터를 매입하고
62년 순교기념탑을 세운 데 이어 66년 순교박물관을 착공, 67년에 축복식을 가졌다.
절두산 순교성지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성지로 떠오르며 순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데는 순교박물관이 기여한 공이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혜화동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이희태(요한, 1925∼81년)씨가 설계한 순교박물관은 현대 교회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이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 세계
건축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한 순교박물관은 순교정신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동시에 한국 고유의 전통미를 한껏 살렸다는 극찬을 받았다.
절두산과 한강변이라는 자연적 배경과 조화를 이뤄 건립된 순교박물관은 본관(3층, 325평)과 성당(99평) 그리고
종탑(25평)으로 이뤄졌다. 옛 초가집 지붕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린 추녀, 조상들이 쓰던 갓 모양의 성당,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상징하는 구멍뚫린 수직 벽 등 건물을 구성하는 하나하나가 순례객들에게 옛 정취를 불러일으키면서 포근한 정감에 젖어들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성당은 제단에서 성찬과 말씀이 반사되어 바깥 세계로 퍼져나가는 부챗살 형태로, 다른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순교박물관은 또한 당대 성미술 거장들의 역량이 총결집된 '교회미술의 보고(寶庫)'나 마찬가지다. 조각가
김세중(프란치스코)씨가 제작한 종탑 순교자상과 대리석 제대, 감실을 비롯해 서양화가 윤명노(아우구스티노)씨의 박물관 모자이크 '순교', 조각가
최의순(요안 비안네)씨가 제작한 성당 안 '십자가의 길 14처', 한국추상화단의 선구자였던 서양화가 정창섭(암브로시오)씨가 그린 대작
'순교자', 최종태(요셉)씨의 작품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등이 절두산 순교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 교회 성미술 작품들이다. 교회
미술에 관한 한 절두산 순교박물관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같은 건축미와 성미술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낸 결과 절두산 순교성지는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성지에서 만난 최정윤(안젤라, 서울 목동본당)씨는
"성지가 집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좋고 또 기도하고픈 마음이 절로 들어서 적어도 1주일에 한두번은 이곳을 꼭 찾게 된다"면서 아직까지
절두산 성지에 와보지 못한 신자가 있다면 꼭 한번 와볼 것을 권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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