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사적지/서울대교구

[서울]절두산 순교성지(하)

알타반 2005. 3. 1. 19:43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하)
758 호
발행일 : 2004-02-01

교회 문화와 예술의 장으로 발돋움
 절두산 순교성지를 구석구석 살펴볼 차례다.

 교회사의 생생한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라면 본관 2층과 3층에 있는 박물관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소장품은 서적류 1250여점, 교회 사적지 유물 750여점, 민속품 150여점, 사진류 290여점 등 모두 3000여점.

 주요 전시물을 꼽아보면 상재상서(上宰相書) 한문 필사본, 김대건 성인 친필 서한, 노기남 주교 선임 교황 교서, 중국 강희(康熙)·건륭(乾隆) 황제 친필 족자, 여사울·개촌리 출토 유물, 정약용이 그린 산수화, 안중근 의사 유품 등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소장품이 없다. 귀에 익숙한 인물들 유품도 유품이거니와 박해시대 이름 모를 신자들의 애절한 신앙이 묻어있는 유품들이 주는 감동 또한 만만찮다. 박해 때 순교한 선조들이 남긴 녹슬고 이끼 낀 묵주 하나를 보면서 그들의 애절한 신앙을 느낄 수 있는 순례객이라면 박물관을 돌아보는 데 시간을 충분히 잡아야 한다. 하나하나 눈여겨보다 보면 하루 해가 짧게 느껴질 것이다.

 박물관은 지난해 좀더 쾌적한 관람을 위해 바닥과 벽면을 새로 꾸미고 진열장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 수리를 거쳐 새롭게 단장했다. 그래서 지금은 여느 현대적 박물관 못지않은 세련된 분위기를 자랑한다.

 박물관을 관람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2층에 있는 '전통 인형으로 빚은 한국천주교회사' 전시실이다. 이벽 세례, 명례방 신앙집회, 김대건 사제 서품, 최양업 신부 선교활동 등 교회사 주요 12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한 이곳은 순교자들 삶과 신앙을 좀더 실제적으로 엿보게 하는 생동감을 지녔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라면 가장 먼저 들르길 권한다. 일단 재미를 느끼게 한 다음 나머지 전시실을 둘러본다면 '빨리 나가자'는 아이들 성화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은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며, 입장료는 1000원이다.

 박물관을 도느라 뻐근해진 다리도 쉴 겸 성당으로 가보자. 성당은 기도하고픈 마음이 절로 들만큼 아늑하며 미적 감각 또한 뛰어나다. 순교박물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은 성당 제대 바로 아래 지하에 성인들 유해를 모신 성해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신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바로 성해실. 제대 오른편에 나 있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28위 순교성인 유해를 모신 성해실이 눈에 들어온다.

 1967년 성당이 건립될 당시 처음 안치된 유해는 남종삼·베르뇌 장 주교·다블뤼 안 주교·이영희·최경환 등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식 때 성인품에 오른 병인박해와 기해박해 순교자 16위다. 이후 김성우·이명서·황석두·이윤일 성인 등 유해를 추가함으로써 지금의 28위가 됐다. 유해는 순교 날짜 순서로 배치하고, 윗줄 6처는 비워둔 상태다. 나중에 순교자들이 시성되면 모실 자리다. 성해실에는 성인들의 처절한 순교정신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신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없는 자식 없다고, 교회 초석을 놓은 그분들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신자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박물관과 성당, 성해실을 한바퀴 돌아본 다음 성지 광장으로 내려오면 한가운데 우뚝 선 김대건 성인 동상이 순례객을 맞는다. 성지가 강변에 자리잡아 광장 앞으로 툭 트인 한강을 내려다보며 감상하는 맛도 괜찮다. 일반인들에게 천주교 성지가 아닌 쉼터로 소개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경관이 일품이다.

 신자라면 김대건 성인 동상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나 있는 14처를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도 이곳을 찾은 큰 의미일 게다. 이곳 14처에는 150여년 전 이곳에서 순교한 신앙선조들이 바쳤을 옛 성로선공(聖路善功, '십자가의 길' 옛 이름) 기도문을 각 처마다 오늘날 기도문과 함께 실은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뎨이쳐 예수 십자가를 지심이라/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과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 평소와는 다른 감동에 젖게 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현재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다. 신자들이 좀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을 수 있는 친근한 성지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지난해 12월 부임한 김용화 주임신부의 포부. 신자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신자들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어린이, 노인 등 여러 계층의 기호에 부합하는 프로그램과 행사를 개발해 성지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한편 성지가 교회 문화와 예술의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철 2호선 합정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 춥다고 집에서만 뒹굴고 있는 아이들 손을 잡고 바람도 쐴 겸 교회사 공부도 할 겸 한번 찾아가보자. 손자를 맞는 할머니처럼 하늘나라 순교자들이 두팔 벌려 반겨줄 것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사진설명)
1. 성당 제대 바로 아래 지하에 있는 성해실에서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이곳에는 순교자 유해 28위가 안치돼 있다.         2. 절두산 순교성지 박물관 2층에 있는 '전통 인형으로 빚은 한국천주교회사' 전시실. 한국 교회사 주요 12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했다.          

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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