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과 공소/서울대교구

[서울]중림동 성당

알타반 2008. 1. 15. 15:49

"서울 중림동성당"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 품은 신앙의 모태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서울 중림동성당
737 호
발행일 : 2003-08-24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 품은 신앙의 모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가톨릭출판사와 지난 봄 문을 연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그리고 서소문성지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신앙을 기리기 위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중림동성당과 한 울타리를 쓰고 있는 교회 기관들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를 뿐 이처럼 다양한 문화공간과 함께 있는 중림동성당은 서울대교구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나열한 기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80년대 이후부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곳에서 어떤 역사가 쓰여졌을까.

 중림동본당은 설립 당시 가까이는 경기도 광주, 과천, 양주로부터 멀리는 개성, 황해도 백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했다. 초대 주임 두세(Doucet) 신부의 탁월한 사목활동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인 성전,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 세번 울려퍼지는 종소리 등이 장안에 화제가 된 덕분에 초창기 중림동본당은 놀라운 교세확장을 이룩하며 서울대교구는 물론 지금은 수원·인천교구 소속이 된 수많은 본당들의 모태가 됐다.

 중림동본당이 19세기말 설립 초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의료 사업 분야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5000여평에 이르는 본당 일대가 원래는 학교와 병원 자리였던 것이다.

 초창기 선교사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두세 신부도 일찌기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고 1901년 가명(加明)여학교를, 1907년에는 약명(藥明)남학교를 세웠다. '가명'은 두세 신부 세례명인 가밀로의 한자식 표기. 두 학교는 1909년 학교 건물을 크게 증축하면서 가명학교로 통합되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우리나라 초등교육 발전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3월 중림동본당은 가명학교 건물을 기반으로 성 요셉 병원을 설립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를 세웠다. 병원은 1955년 10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지정된 후 61년 극빈층 환자들을 위한 실비(實費)병원으로 전환했다. 성 요셉 병원은 명동 성모병원에 자선 진료소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됨에 따라 1974년 폐원하면서 성모병원으로 흡수된다.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는 1962년 1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 간호학교로 승격돼 다음해 2월 중림동본당 구내에서 철수할 때까지 모두 8회 입학식과 5회 졸업식을 가졌다. 당시 명동성당 구내에 있던 가톨릭대 의학부로 편입된 간호학교는 63년 12월 가톨릭대 의학부 간호학과로 다시 승격되면서 한국 가톨릭 간호사업의 모태로 급성장한다. 명동성당이 가톨릭대 의과대학 출발지라면 중림동성당은 가톨릭대 간호대학의 산실인 셈이다.

 중림동성당은 한국교회 첫 서양식 교회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무려 44위의 성인을 낳은 서소문 순교성지를 품 안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니는 곳이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성인을 배출한 성지의 본당답게 순교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남다르다.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아 성당 구내에 건립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은 순교 성인들의 얼을 본받기 위한 대표적 노력 가운데 하나. 이곳에는 현재 성인들 유해를 비롯해 각종 신심서적과 교회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던 서소문 성지에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지고 또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한 기념관도 마련됐지만 중림동본당 주임 원종현 신부는 서소문 성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회 관심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중림동본당이 관할하는 서소문성지가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라는 점을 꼭 일깨우고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보여준 신앙이 없었다면 성전은 그저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서소문 성지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다른 순교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순교자 현양에 대한 원 신부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은 요즘 한달 평균 4500여명의 외부 신자들이 서소문 성지를 순례하고 또 중림동본당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원 신부는 앞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미사를 순교자 현양 미사로 봉헌하고 순교자 기념관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중림동본당을 점차 순교 신앙의 중심지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중림동본당은 올해 3월 성당 구내에 약현 피정의 집을 세우고 또 5월에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낮미사를 신설하는 등 세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성당이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이점을 복음화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본당 측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활동들이다.

 서울 한복판 약현언덕에 숨어있는 작고 고즈넉한 중림동성당. 100여년 전 이곳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성당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옛 신자들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성당 바로 앞 서소문 성지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순교자들의 순교 장면을 마음 속 깊이 그려보자. 역사 속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신앙인에게 중림동성당은 결코 작은 성당이 아닐 것이다. 


1. 종각의 첨탑이 세워지기 이전 1900년경 중림동성당 전경. 초대 주임 두세 신부의 탁월한 사목활동에 힘입어 초창기 중림동본당은 놀라운 속도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2. 서소문성지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성지를 품안에 둔 중림동본당은 순교성인에 대한 공경이 남다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가톨릭출판사와 지난 봄 문을 연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그리고 서소문성지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신앙을 기리기 위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중림동성당과 한 울타리를 쓰고 있는 교회 기관들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를 뿐 이처럼 다양한 문화공간과 함께 있는 중림동성당은 서울대교구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나열한 기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80년대 이후부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곳에서 어떤 역사가 쓰여졌을까.

 중림동본당은 설립 당시 가까이는 경기도 광주, 과천, 양주로부터 멀리는 개성, 황해도 백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했다. 초대 주임 두세(Doucet) 신부의 탁월한 사목활동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인 성전,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 세번 울려퍼지는 종소리 등이 장안에 화제가 된 덕분에 초창기 중림동본당은 놀라운 교세확장을 이룩하며 서울대교구는 물론 지금은 수원·인천교구 소속이 된 수많은 본당들의 모태가 됐다.

 중림동본당이 19세기말 설립 초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의료 사업 분야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5000여평에 이르는 본당 일대가 원래는 학교와 병원 자리였던 것이다.

 초창기 선교사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두세 신부도 일찌기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고 1901년 가명(加明)여학교를, 1907년에는 약명(藥明)남학교를 세웠다. '가명'은 두세 신부 세례명인 가밀로의 한자식 표기. 두 학교는 1909년 학교 건물을 크게 증축하면서 가명학교로 통합되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우리나라 초등교육 발전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3월 중림동본당은 가명학교 건물을 기반으로 성 요셉 병원을 설립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를 세웠다. 병원은 1955년 10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지정된 후 61년 극빈층 환자들을 위한 실비(實費)병원으로 전환했다. 성 요셉 병원은 명동 성모병원에 자선 진료소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됨에 따라 1974년 폐원하면서 성모병원으로 흡수된다.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는 1962년 1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 간호학교로 승격돼 다음해 2월 중림동본당 구내에서 철수할 때까지 모두 8회 입학식과 5회 졸업식을 가졌다. 당시 명동성당 구내에 있던 가톨릭대 의학부로 편입된 간호학교는 63년 12월 가톨릭대 의학부 간호학과로 다시 승격되면서 한국 가톨릭 간호사업의 모태로 급성장한다. 명동성당이 가톨릭대 의과대학 출발지라면 중림동성당은 가톨릭대 간호대학의 산실인 셈이다.

 중림동성당은 한국교회 첫 서양식 교회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무려 44위의 성인을 낳은 서소문 순교성지를 품 안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니는 곳이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성인을 배출한 성지의 본당답게 순교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남다르다.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아 성당 구내에 건립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은 순교 성인들의 얼을 본받기 위한 대표적 노력 가운데 하나. 이곳에는 현재 성인들 유해를 비롯해 각종 신심서적과 교회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던 서소문 성지에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지고 또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한 기념관도 마련됐지만 중림동본당 주임 원종현 신부는 서소문 성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회 관심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중림동본당이 관할하는 서소문성지가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라는 점을 꼭 일깨우고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보여준 신앙이 없었다면 성전은 그저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서소문 성지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다른 순교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순교자 현양에 대한 원 신부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은 요즘 한달 평균 4500여명의 외부 신자들이 서소문 성지를 순례하고 또 중림동본당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원 신부는 앞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미사를 순교자 현양 미사로 봉헌하고 순교자 기념관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중림동본당을 점차 순교 신앙의 중심지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중림동본당은 올해 3월 성당 구내에 약현 피정의 집을 세우고 또 5월에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낮미사를 신설하는 등 세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성당이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이점을 복음화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본당 측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활동들이다.

 서울 한복판 약현언덕에 숨어있는 작고 고즈넉한 중림동성당. 100여년 전 이곳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성당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옛 신자들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성당 바로 앞 서소문 성지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순교자들의 순교 장면을 마음 속 깊이 그려보자. 역사 속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신앙인에게 중림동성당은 결코 작은 성당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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