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착은 유별나다. 수많은 식당 간판에 붙어있는 '원조'(元祖)는 첫번째에 대한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교회에서 봐도 우리나라
첫 사제가 김대건 신부라는 것은 대부분 알지만 두번째 사제가 누구인지 아는 신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성당은 어디일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열에 아홉은 명동성당을 꼽겠지만 실은 서울역 서쪽 맞은 편 언덕에 보일락말락 숨어있는
중림동성당(옛 약현성당)이다. 지금으로부터 111년전인 1892년에 세워진 이 성당이 1898년에 완공된 명동성당(옛 종현성당)보다 6년 앞서
이 땅에 등장한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인 것이다.
약현(藥峴)은 원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약초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순교터인 서소문 순교성지가 발 아래 내려다뵈는 약현 언덕에 본당이 설정된 해는
1891년. 당시 서울에 하나뿐인 종현본당만으로는 늘어나는 교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종현본당 주임 두세(Doucet) 신부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본당 신설을 요청함에 따른 것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두번째 본당이었으며, 전국적으로는 열번째였다.
초대 주임 두세
신부 감독 아래 종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를 맡아 그해 공사에 들어간 약현성당은 이듬해 1892년 12월 완공되었는데, 프랑스에
주문한 종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복식은 해를 넘긴 1893년 4월 뮈텔 주교 집전으로 거행됐다.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제 서울 문밖 중심에 성당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또한 성당다운 성당으로서는 한국 최초이고 유일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벽돌을 쓴 성당은 길이 32미터, 폭 12미터, 종탑 높이 22미터의 120평 규모였다. 이후
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을 올렸고, 1921년에는 성당 내부 칸막이를 철거하는 한편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교체하는 내부 개조공사를 벌였다.
1974년부터 2년여에 걸쳐 대대적 해체 복원 공사를 실시한 중림동성당은 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중림동성당은 1998년 2월 술에 취한 한 행려자의 방화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벽돌 구조물과 앙상한 잔해만 남긴
중림동성당은 1년 6개월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2000년 9월 다시한번 축복식을 가졌다. 복원 공사는 성당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따른다는
원칙으로 74년 대대적 보수 당시 변형된 부분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성당이 화재 전 성당보다
건립 당시 성당 원형에 좀더 충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면 건립 이후 한국교회 건축 모델이 된 중림동성당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중림동성당은 소박하다. 흔히 '옛날 성당'하면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고딕적 요소가 극히 적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중림동성당은 대체로 아담하면서도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성당은 기본적으로 몸채에 곁채
2개가 딸려 있는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 구조다. 성전 가운데 두 줄 돌기둥이 있고, 기둥 바깥 양쪽 신자석 창은 둥근 아치로 처리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둥근 천장 부분. 가운데가 가장 높고 주위가 점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이다. 제대 좌우 신자석 정면에는 성 모자상과
성 요셉상을 모셨으며, 좌우 벽에는 다소 이국적 면모의 14처가 걸려 있다. 저녁 햇살이 제대 뒷면 3개 유리화를 통해 성전 안을 비추는 광경은
잠시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할 만큼 아름답다.
교회건축 전문가 김정신(스테파노, 단국대) 교수는 '약현성당의 건축사적 의의와 보존
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중림동성당을 이렇게 평가한다.
"1900년 이전 몇 안 되는 서양식 건물 중 일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서양에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명동성당과 함께 한국 근대 건축사의 주요한 서두를 점하고 있다. 명동성당만큼 완전하고 순수한 서양 중세 양식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명동성당 건축에 앞서 교회 및 서양 건축의 핵심 요소들이 채택되고 시험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약현성당은 이후 교회건축 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 초기 서양식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명동성당이라는 그늘에 가려
신자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중림동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서울역에서 가깝고, 전철로는 2, 5호선
충정로역에서 가톨릭출판사 방향으로 걸어내려가면 5분 거리에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데가 있었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성당 구내 또한 여유롭다. 잠시 바쁜 일손을 놓고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신자라면 꼭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계속>
남정률 기자njyul@pbc.co.kr
평화신문
기자 pb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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