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생각이 머무는 자리

[스크랩] 낮아야 넓어질 수 있음을

알타반 2005. 12. 28. 18:22

           낮아야 넓어질 수 있음을

 

바다는 시냇물보다 강물보다 낮게 있기 때문에 넓을 수 있다고 누군가는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바다라 부른다고 한다.
낮지 않다면 넓을 수 없고 낮지 않다면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예수도 부처도 크고 넓은 사람일 수 있었던 건

낮은 모습으로 낮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싶다.

부처와 예수를 믿고 따르려는 많은 이들이

그 실제인 낮은 모습은 믿고 따르려 하지 않고 되려 높은 모습을 꿈꾸며,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복을 빌고

스스로의 높은 자리를 만들어가기 위한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낮은 모습을 받아들이기보다 이해하기보다 이해시키려하고 배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역 근처에서 밥을 나누는 많은 이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선교의 이름으로 ‘무료급식’과 ‘봉사’란 이름아래 나눔을 행하고 있다.

나 역시도 종교의 이름은 아니지만 ‘낮은 자리’라는 모임 안에서

‘밥 나누기’와 ‘나눔’을 어설프지만 행하고 있다.


행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생각의 차이, 마음의 차이는 있는 것 같다.
무료급식을 하시는 어떤 분들이

“여기 봉사하러 온 분들은 모두 천당에 가실 겁니다.”

“힘 있고 젊은 사람들은 밥 못줍니다.”

“얻어먹는 것만도 고마워해야지” 하신다.


봉사하러 온 분들이 천당 가는 것도 좋지만,

봉사 받는 분들이 천당 가도록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중요할 것이고,

더 힘 있고 돈 많은 이들의 도둑질과 행패는 끝도 없고,

배고픈 이들은 살과 피를 부지불식간에 빨아먹고 있는 거기에는 어떤 단호함이 있으신지…


집에서 자식에게 쏟는 정성만 못함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들도 투정하고 비판하고 욕할 수도 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을 담았다고 좋은 소리만 듣기를 원하는지.

봉사하고 또 봉사해도 늘 모자람을 모른단 말인가?


이해는(Under +stand) 곧 낮게 서는 모습이다.
소외당하고 돈 없고 힘없는 약점을 가진 이들에게

봉사를 명분으로 위에 서려하고 가르치려하고

이용하려는 데서 더 큰 문제와 잘못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봉사를 한다면 더 낮게 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등한 입장임을 인지는 하여야 한다.


당신도 나도 우리도 다 약점이 있고 약자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봉사의 자리라고 내 삶 전체가 봉사의 삶은 아니듯이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무료급식소라고 얻어먹기만 하는 삶도 아닌 것이다.

내가 조금 낮아지고 그들을 조금 높여준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예수와 부처를 닮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물의 깊이는 바다의 깊이에 어림도 없다.

바다는 수많은 물들이 모여 이루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길에 조금씩이나마 힘을 내어놓는 것.

모여서 어울리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나눔도, 통일도, 평화도 가까워질 것 같다.

 

        공동선 길위의 명상에서..이동원 / ‘낮은자리’ 봉사자. 간판업


 
출처 : 블로그 > 옹달샘-나그네들 지나다 들려 목 축일 샘 | 글쓴이 : 옹달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