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지 않고 쇼핑을 하지 않으며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쓰지 않는 젊은이가 있다면 별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런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TV 리모콘을 찾던 최정진(베드로)씨는 지난해
가을 예수살이 공동체 광야수행 '끊어버리기 운동'(OFF 운동)에 참여한 후 지금은 아예 TV 플러그를 빼놓고 산다. TV를 보던 시간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훨씬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무언가 끊어버린다는 것은
순간의 아픔이지만 영원한 기쁨임을 느끼게 한다"는 최씨는 도시에서 광야 체험은 고통을 주지만 진정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다며 주위 사람에게도
참여를 권하고 있다.
조봉현(바울라)씨는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 불안, 초조해지고 출근해서도 휴대폰 생각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게 바로 중독이고 집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끊어버리기 운동'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전화기·TV·쇼핑 등 너무 많은 소비 문화에 우리도 모르게 중독돼 있었어요. 이 운동은 불편해지기 위한 운동이 아닌,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운동이라고 봐요."
예수살이 공동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광야수행으로 '끊어버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소비사회의
유혹, 즉 쇼핑·TV·휴대폰·신용카드·자가용·패스트푸드·가공식품·액세서리 등을 끊어버리기 위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TV나
휴대폰이 나쁘니 무조건 끊어버리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에 대해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자유로워질 때 이를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고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이 운동에는 예수살이 공동체가 여름과 겨울에 실시하는 '배동교육' 수료자 중에서 60명
이상이 참가하고 있다.
"습관적 편리함에 익숙해 있던 나 자신을 발견했으며, 이런 것을 자유롭게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대인관계에서 불편한 점이 많아 무조건 끊는 것을 고려해야겠다. 하지만 그런 불편을 체험하면서 본질적 문제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공동체 회원들은 1박2일 월례모임인 '찰고모임'에서 이 운동 수행 체험과 각자의 삶을 나누며 서로 자극을 주고 격려하고 있다.
이제 모임에선 "OFF운동만이 아니라 on운동도 전개해보자"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공동체 회원들이 소비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방법이다. 또 다른 모습도 있다.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던 강상헌(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씨는
예수살이 공동체를 접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배동교육과 심화과정의 수련생활을 거쳐 '민들레 서원'을 한 강씨는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에 더 이상
매달릴 수 없다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현재 한 시민단체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강씨는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또 다른 '자유와 기쁨'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이 한단계 올라가면 자기 자신은 그를 누르고 두단계 올라가야 하고, 다른
사람이 하나를 소유하면 자신은 그 이상을 소유해야 하고, 또 그런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삶이 경쟁과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우리 사회 모습이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이런 사회에서 자기 자신이 많이 소유하면 누군가 덜 갖는 사람이 생기고, 자신이 밟고 올라 가는 상대방이
또다른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려 한다. 서로가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한몸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공동체를 가로막는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운동이며 생활운동이자 대안운동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회원들은
'4행(行) 5계(戒)'의 수행(修行)을 통해 이러한 운동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4행은 매일 명상 시간을 갖고 매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매월 1박2일 찰고모임에 참여하고 매년 3박4일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생활지침인 5계는
기도·노동·공유(公有)·배려·정직이다.
하지만 세상의 가치와 유혹을 거슬러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 예수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에 부담을 느껴 떠나가는 젊은이들도 있다. 반면 이 공동체의 두레모임·월모임·청년금요미사 등 여러 모임을 통해 갈등하는 자신을 바로 세우며
힘을 얻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모임 과정에서 실제 공동체 생활을 체험해 보자는 의견이 제시되어 '밀알의
집'공동체가 현재 운영되고 있으며, 예수살이 공동체 정신을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으로 발전해 현재 '산위의 마을'이 준비 중에 있다. 또한
예수살이 공동체에 관심갖는 장년층이 생겨나면서 오는 9월께 장년층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밀알의 집 대표이자 산위의 마을 추진
대표인 김정옥(율리안나)씨는 이 운동은 "우선 나 자신의 변화로부터 출발한다"며 그렇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에도 항상 깨어 있으며, 연대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호 지도신부는 "현대 소비 사회에 물들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예수살이 공동체 운동은 인생의 의미있는 부분이며 성찰의 기회로, 교육을 통해 새로운 각성과 변화를 요구한다"며 중요한 것은 영성을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살이 공동체 취지와 영성 "과잉 소비 사회는 생태계와 인간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복음적
가치관과 시민윤리, 공동체 의식이 붕괴된 이기와 탐욕의 시대 상황에서 '청년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이에 참
인간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참 모습을 발견하는 올바른 신학과 예수로 사는 참 신앙으로 오직 하느님 나라를 다시 추구해야 함을 결의한다."
98년 3월1일 예수살이 공동체 창립미사에서 발표된 창립선언문의 한 부분으로,이 공동체 운동의 취지를 담고 있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박기호(서울 서교동본당 주임) 신부 등 몇몇 사제들이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고자 소비시대 청년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실시한 것을 계기로 출발했다.
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인간성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인간과 자연이 모두 한몸, 즉 공동체임을
고백하며 서로 섬기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체의 영성이다. 특히 광야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를 통해 이 시대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낮은 자리를 찾아가 소외된 이의 벗으로 산 예수를 통해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며, 십자가상의 예수를 통해 현실에 도전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삶을 살아가길 열망한다.
이것이 예수살이 정신이며 이러한 삶을 통해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아가려는 이상을
담고자 한다. ■공동체 '밀알의 집'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고 싶은 젊은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대상이다. 일주일 같이
살아본 뒤 공동체 가족들이 의견을 모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현재 '가족'은 1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는 5명과 한두 달 체험하러 온
4명이 살고 있다. 일과는 아침 6시에 기상해 함께 기도하고 복음 묵상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식사 후 각자 일터로 나가며, 밤 10시에
공동기도 시간을 갖고 영적독서와 묵상, 성찰을 한 뒤 다음날 일과에 대해 나눈다.
밀알의 집이 특히 중시하는 것은 '주일 함께
보내기'다. 주일에는 텃밭에 채소 가꾸기, 문화행사 참여하기, 대청소하기 등 함께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매월 1회 자기 시간을
갖는다. 그래선지 이 집을 거쳐간 상당수가 주일을 함께 보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서로 부딪치면서 변화하려고 애쓴 공동체 생활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고 있다. 각자 형편에 맞게 생활비를 내며 한달을 보낸 뒤 남은 것은 모두 털어내어 이웃돕기 등에 사용한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400평 대지의 지하 1층 지상 2층 가정집을 빌려 살고 있다. 2층이 밀알의 집
공동체이고 1층은 모임 공간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30분에 봉헌되는 청년미사는 찬양의 노래를 곁들여 생동감있게 진행되며 미사 후 소박한
저녁식사를 같이 나눈다. 미사 봉헌은 공동체의 사제 모임인 '길벗모임'사제들이 교대로 집전한다.
예수살이 공동체 기본 교육인
배동교육도 이곳에서 실시된다. 지금까지 900여명이 참가했으며, 올 여름 배동교육은 8월17일부터 3박4일간 실시된다.
문의:02-3144-2144
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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