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삼도2동 도심 한가운데 빌딩들 사이로 높이 솟은 십자가탑이 눈길을 끄는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종탑은 전국 14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게 개신교보다 가톨릭 신자가 더 많다는 제주도의 가톨릭 신앙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성당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80년 된 느티나무 가지가 만들어 내는 넉넉한 그늘과 그늘 아래 벤치가 찾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게다가 성당을 지으면서 ‘열린 교회’를 지향해 주변의 모든 울타리를 제거한 탓인지 성전 앞 마당은 신자들 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다.
이처럼 넉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성전을 올려다보면 우뚝 솟은 3개의
십자가탑이 시선을 끈다. 성전 전면으로 라틴 십자가(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고 곧게 뻗어 있는 모양) 형상의 이 탑은 가톨릭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와 제주도의 특징인 삼다(三多·여자, 바람, 돌이 많음)와 삼무(三無·도둑, 거지, 대문이 없음)를 상징화한 것.
시계와
장미창이 보이는 53m 높이의 고딕식 중심탑 좌우의 양쪽 탑 하단에는 각각 성모 마리아와 예수 성심의 전신상이 서 있고 그 좌우 뒤쪽 벽에는 이
두 상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에 반사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로마네스크풍
고딕 성당 특유의 엄숙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좌우로 좁은 측랑을 이루고 있는 기둥들 외에는 별다른 기둥이 없어 기둥들로 인해 막혀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오히려 1700석의 좌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다 비교적 밝은 색조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햇살과 제대를 향해
완만하게 아래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구도가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아늑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성전 제대 뒤로는 중앙의 십자가와 좌우
모서리의 성모상과 예수상이 밖에서 바라본 성당 입구 정면의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벽면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신자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어우러져 은은한 분위기를 더욱 살려내고 있다.
1899년 제주교구 최초의 본당이 있었던 그 자리에
위치해 있는 중앙성당은 주교좌 성당으로서는 네번째로 신축된 성당이다. 제주 선교 100주년(1999년) 기념 사업으로 지난 1997년 세번째
성당을 허물고 착공해 1999년에 완공했으며, 2000년 7월 당시 교구장 김창렬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성당 건축 당시
중앙본당 주임이었던 고승헌(노형본당 주임) 신부는 “처음에는 2700여명의 본당 신자들에게 50억이 넘는 성전 공사는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면서
“하지만 어려운 때 함께 성전을 짓다 보니 신자들간에 더욱 일치하고 합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특히 성당 공사를 시작했던
97년 말 갑자기 외환 위기(IMF)가 닥치면서 그 막막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고 신부는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딛고 100주년 기념 성전을 완공하게 된 이면에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었다. 많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주교좌 본당의 두번째 성전으로 당시
제주도에서 유일한 서양식 고딕 건물이었던 1930년대의 ‘뾰족당’이 아직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100주년 기념 성전은 바로 이
뾰족당을 원형으로 삼았는데 성전을 건축하면서 본당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자 ‘뾰족당’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지역 주민들은 물론
타종교인들까지도 성금을 보내오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변의 격려와 신자들의 단합된 힘으로 건립된 중앙성당은
본당 신자들 뿐 아니라 제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성전이다.
조은일
기자 anniej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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