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과 공소/서울대교구

[서울]명동대성당(상)

알타반 2005. 3. 1. 09:17
[주교좌 성당을 찾아서] 명동대성당(上)
676 호
발행일 : 2002-05-19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의 심장
주교좌(主敎座)의 협소한 의미는 ‘주교가 앉아 교회의식을 행하는 의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교회가 발전하고, 또 세상 한가운데로 나오면서 주교좌성당은 지역교구의 역사와 문화를 응축한 곳이요, 지역사회와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터전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교구의 주교좌성당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창간기획으로 ‘교구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주교좌성당을 설립연대 순으로 지상순례하는 ‘주교좌성당을 찾아서’를 신설한다. 주교좌성당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건축사, 문화예술적 가치 등에 이르기까지 주교좌성당의 모든 것을 안내한다.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上) 명동대성당 건축사  

5월의 명동대성당이 눈부시게 싱그럽다.

깊은 역사가 숨을 쉬는 성당과 그 뒤에서 건물을 고즈넉이 감싸고 있는 성모동산의 수목이 전날 내린 단비에 말끔히 목욕을 한 덕분이다.

‘한국교회 1번지’ 명동대성당.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지만 1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 자체가 우리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로 다가온다.

명동대성당이 자리잡은 언덕의 옛 지명은 종현(鍾峴)이다. “남부의 종현은 명동과 저동 사이에 있는데 지대가 높고 조망이 좋은 곳이다. 윤정현(이조판서 벼슬을 지낸 인물)의 집이 그 마루턱에 있었는데 10여년 전 서양인이 이를 구입하여 철거하고서 평지를 만들어 교회당을 세워 6년 만에 공사를 마쳤다.”(황현의 「매천야록」)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한국교회 최초의 성당 터를 왜 종현에 잡았을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종현 언저리에는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가 유학자들과 함께 첫 신앙집회를 연 명례방((明禮坊)이 있었다.

교회와 인연이 있는 야트막한 구릉을 성당부지 1순위로 꼽는 서양인들에게 종현은 더 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부지는 황해도 사람 김 가밀로 명의로 1883년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분할 매입했다고 기록돼 있다.

성당은 1892년에 정초식을 갖고 6년 만인 1898년에 완공했다. 설계를 맡은 파리외방전교회 코스트 신부는 자신의 고향에 있는 몽펠리에 주교좌성당을 본 따 전통 고딕양식을 채택했다. 건축규모는 길이 68m, 폭 29m, 종탑높이 47m, 연면적 612평.

선교사와 신자들은 서양건물을 짓는 미장이나 목수도 없는데다 자재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처럼 웅장한 건물을 짓느라 숱한 고생을 했다. 당시 조선대목구의 총 신자수는 약 1만4500명. 선교사들은 전국 곳곳에 편지를 띄워  “한양에 천주당을 세우니 모두 부역에 나서라”고 독려했다. 이 기별을 받은 신자들은 농사철을 피해 개나리 봇짐을 매고 성당에 도착해 보름 이상씩 부역을 하고 돌아갔다.

건축 과정에서 사고와 해프닝도 자주 벌여졌다. 국유지임을 주장하는 정부와 대지 분쟁을 겪었는가 하면, 중국에서 불러온 벽돌공들이 초보자라서 설계 감독을 맡은 코스트 신부가 무척 애를 먹었다.

서양인과 천주교인들이 대들보도 없는 괴상한(?) 건물을 짓고 그 위해 종탑을 높게 쌓아가자 도성내 양반들은 “서양 오랑캐가 지붕을 제대로 만들 줄 모른다. 탑을 쌓아 양반들을 감시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젊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활을 쏘아대며 훼방을 놓기도 했다. 집을 지으면 지붕에 대들보 얹는 일부터 했던 사람들이 사방에 벽만 쌓아가는 건물을 수상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명동대성당은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한국근대 건축사에 기록돼 있다. 특히 일본을 통하지 않고 서양에서 곧바로 유입된 순수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라 초기 양식건축 연구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명동대성당은 또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중세시대에 절정을 이룬 고딕 건축양식은 웅장하고 장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한양 한복판에 들어선 명동대성당은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이겨낸 한국교회가 이제부터 찬란한 신앙의 꽃을 피우겠다고 다짐하는 각오의 표현이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사진설명)
1.명동대성당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1898년 완공된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당시 박해를 이겨낸 한국교회의 승리와 힘찬 도약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2. 1903년경 명동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대성당. 주교관과 문화관, 그리고 왼쪽으로 낮게 둘러쳐진 담장이 또렷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