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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셀름 신부님의 제6 강의.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
알타반
2008. 1. 17. 17:48
제 6 강의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에서 체험한 것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화자는 17년 전부터 피정의 집에서 영적 지도자로서 일해 왔다. 이 집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식년을 얻어 자신의 영성을 북돋우려고 하거나, 성소의 갈등, 독신생활의 위기, 우울증, 개인적인 위기, 내적 공허 등을 치유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18명이 최대로 3개월까지 거주할 수 있는데, 이들을 위해 3명의 심리치료사와 4명의 영적 지도자가 일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영적 대화와 심리 치료적 대화를 하는 것 외에 매주 정기적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그룹,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그룹이 있으며, 몸으로 직접 일하기, 명상 춤이나 긴장 해소를 위한 동작을 하고 스포츠도 한다.
1. 치료적 동반을 위한 관계
피정의 집에서 영적 동반은 심리치료적 동반과 같은 선상에 있다. 손님은 매주 영적 지도자, 심리치료사와 각각 대화를 나눈다. 심리치료사와 영적 지도자는 매주 갖는 팀 회합 시간에 개개의 손님이 처한 상태에 대해 대화를 한다. 한 팀이 되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서로 다른 치유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피하고 협력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손님들 중에는 영적 동반이나 치료적 동반 중 한쪽만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으나 둘 다 중요하다. 영적 성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치료적 동반도 필요하고, 치료적 과정을 마친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리치료 과정에서 발견된 부분은 영적 동반에서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참으로 인지할 때,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영적 길은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지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면 영적 방법은 공중에 떠 있게 된다.
2. 자아 표상과 하느님 표상
하느님 표상에 대해 작업하는 것은 영적 동반에서 본질적인 측면 중 하나이다. 하느님 표상에 대해 작업하는 것은 자아 표상에 대한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심리치료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하느님 표상에 대해 단지 신학적으로만 작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수도자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본당 신부님이나 종교선생님이 자신에게 벌을 주는 하느님에 대한 표상을 강하게 각인했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화자의 경험에 의하면 종교선생님이나 부모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자신에 대한 표상을 어떻게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 대한 표상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하느님 표상을 완벽한 존재로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일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앞에 완벽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서 어떤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감추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가 하느님께서도 자신을 판단하실까 염려한다.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용서하시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3. 삶을 하느님께로 인도함
영적 동반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서 만나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영적 동반에서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하는 것이다.
많은 수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의 불면증을 해소해주도록 하느님께 청한다. 이러할 경우 하느님을 자신에게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영적인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느님을 활용할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해야 한다.
영적 동반을 하다보면 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느낄 수 없음을 호소한다. 기도하고 묵상하지만 하느님은 멀리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자신의 영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극이다.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하느님도 느낄 수 없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때에는 우울증의 원인을 캐는 일보다는 우울증과 화해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 우울증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우울증을 통해 나는 나의 삶과 주변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나를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게 된다. 우울증은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화자에게 있어서 영적 동반을 하는 방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아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향한 길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과 화해해야 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기회를 발견해야 한다.
4. 자신의 생명력을 찾기
사제와 수도자들 중에는 날마다 성무일도, 묵상, 묵주기도를 충실히 하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종교적 의식들도 물론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종교적 의식들을 채우는 데에만 고정되면 이들은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만 인도하고 만다. 이러한 것에 고정되는 행위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느님 앞에 내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급급한 것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통해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과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영적으로 생기 있게 하기보다는 경직되게 한다. 이들은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 또는 동반자인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 삶의 목표는 자신의 생명력을 되찾는 것이다. 종교적 의식들을 나의 내적 자유로부터 수행할 때에 그것은 나를 생기 있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은 종교적 의식으로 축제를 지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종교적 의식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한다면 그것은 나를 경직시킨다.
자신의 생명력을 찾는 길 중 하나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떤 때에 자신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는지, 어떤 놀이를 가장 즐겨했는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했는지를 회상하면 자신의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나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5. 성경 구절의 치유력
화자는 손님과 대화를 한 후 성결의 한 구절을 묵상하도록 한다. 손님은 그 구절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 구절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은 그 구절을 통해 어떤 체험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의 관건은 성경 구절을 신학적으로, 심층심리학적으로 잘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에 의해 어떤 체험을 하는가이다. 화자는 성경 구절이 손님에게 치유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종종 체험한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억압하며 경직된 내면의 얼음 속에 갇힌 느낌들과 만나도록 할 수 있다.
성경은 거룩한 책이다. 성경은 성스러운 품격을 지니고 있다. 성스러움은 힘, 순수함, 치유하는 존재, 온전하게 하는 존재로 자신을 드러낸다. 성경은 다른 책들이 지니지 못한 고유한 힘을 지니고 있다. 화자는 묵상하도록 성경 한 구절을 제시할 때, 그 구절이 지닌 치유의 힘을 신뢰한다. 그런데 성경을 대할 때에는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지식을 넓히거나 신학적 연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 구절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성경구절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것이고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 구절들은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삶의 역사를 발견하도록 열려 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벌써 건강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성경 구절을 묵상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치유의 이야기 안에서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이 예수님은 2천년 전에만 활동하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오늘날에도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기도 안에서, 고요 안에서, 미사 전례 안에서 나를 만나신다. 나의 상처들을 그분께 보여드리면, 그분은 그 상처들을 어루만지시고 하느님이 지니신 치유의 힘이 흘러들도록 하신다. 그리스도는 내면의 의사로 내 안에 계신다. 치유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이 내면의 의사와 만나도록 한다.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좋은 책들도 많이 읽어서 풍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성경은 단지 신심 깊은 말을 담은 책, 결국 부족함이 많은 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손님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묻는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생명력을 체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수고를 힘들어 할 정도로 너무 편안하게 살아간다. 많은 독서를 통해 마음이 준비되어야 성경의 씨앗이 그 안에 자리 잡아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치유의 힘을 전개할 수 있다.
마치는 말
이 강의록에서 화자는 영적 동반에 대해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관점들을 서술했다. 영적 동반은 이데올로기를 벗겨드리고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안내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영적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 중 일부를 자기 자신과 하느님께 숨겨두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만나지 못한다. 많은 수의 종교인들이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다는 호소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에 항상 원인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다. 이들은 하느님께 오직 자신의 밝은 면만 보여 드린다. 하느님 앞에 내놓지 않고 감추어 둔 어두운 부분이 이들을 불구가 되게 하고 위축되게 하여 자기 자신과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치료(Therapie)는 이러한 억압을 그만두게 하고 진면목을 하느님 앞에 내놓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삶이 다시 피어나고 영적 길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
영적 그리고 치료적 동반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에서 체험한 것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화자는 17년 전부터 피정의 집에서 영적 지도자로서 일해 왔다. 이 집은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안식년을 얻어 자신의 영성을 북돋우려고 하거나, 성소의 갈등, 독신생활의 위기, 우울증, 개인적인 위기, 내적 공허 등을 치유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18명이 최대로 3개월까지 거주할 수 있는데, 이들을 위해 3명의 심리치료사와 4명의 영적 지도자가 일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영적 대화와 심리 치료적 대화를 하는 것 외에 매주 정기적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그룹,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그룹이 있으며, 몸으로 직접 일하기, 명상 춤이나 긴장 해소를 위한 동작을 하고 스포츠도 한다.
1. 치료적 동반을 위한 관계
피정의 집에서 영적 동반은 심리치료적 동반과 같은 선상에 있다. 손님은 매주 영적 지도자, 심리치료사와 각각 대화를 나눈다. 심리치료사와 영적 지도자는 매주 갖는 팀 회합 시간에 개개의 손님이 처한 상태에 대해 대화를 한다. 한 팀이 되어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서로 다른 치유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피하고 협력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손님들 중에는 영적 동반이나 치료적 동반 중 한쪽만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으나 둘 다 중요하다. 영적 성장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치료적 동반도 필요하고, 치료적 과정을 마친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리치료 과정에서 발견된 부분은 영적 동반에서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참으로 인지할 때,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영적 길은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지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면 영적 방법은 공중에 떠 있게 된다.
2. 자아 표상과 하느님 표상
하느님 표상에 대해 작업하는 것은 영적 동반에서 본질적인 측면 중 하나이다. 하느님 표상에 대해 작업하는 것은 자아 표상에 대한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심리치료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하느님 표상에 대해 단지 신학적으로만 작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수도자들 중에는 어린 시절에 본당 신부님이나 종교선생님이 자신에게 벌을 주는 하느님에 대한 표상을 강하게 각인했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화자의 경험에 의하면 종교선생님이나 부모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자신에 대한 표상을 어떻게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 대한 표상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하느님 표상을 완벽한 존재로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일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앞에 완벽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서 어떤 잘못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감추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판단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가 하느님께서도 자신을 판단하실까 염려한다.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도 용서하시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3. 삶을 하느님께로 인도함
영적 동반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서 만나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영적 동반에서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하는 것이다.
많은 수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의 불면증을 해소해주도록 하느님께 청한다. 이러할 경우 하느님을 자신에게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영적인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느님을 활용할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이해해야 한다.
영적 동반을 하다보면 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수도자들이 하느님을 느낄 수 없음을 호소한다. 기도하고 묵상하지만 하느님은 멀리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자신의 영혼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극이다.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하느님도 느낄 수 없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때에는 우울증의 원인을 캐는 일보다는 우울증과 화해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 우울증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우울증을 통해 나는 나의 삶과 주변 세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나를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게 된다. 우울증은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할 수 있다.
화자에게 있어서 영적 동반을 하는 방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아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향한 길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과 화해해야 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기회를 발견해야 한다.
4. 자신의 생명력을 찾기
사제와 수도자들 중에는 날마다 성무일도, 묵상, 묵주기도를 충실히 하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종교적 의식들도 물론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종교적 의식들을 채우는 데에만 고정되면 이들은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만 인도하고 만다. 이러한 것에 고정되는 행위는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느님 앞에 내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급급한 것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통해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과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영적으로 생기 있게 하기보다는 경직되게 한다. 이들은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 또는 동반자인 우리에게 있어서 영적 삶의 목표는 자신의 생명력을 되찾는 것이다. 종교적 의식들을 나의 내적 자유로부터 수행할 때에 그것은 나를 생기 있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은 종교적 의식으로 축제를 지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종교적 의식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의식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해한다면 그것은 나를 경직시킨다.
자신의 생명력을 찾는 길 중 하나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어떤 때에 자신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는지, 어떤 놀이를 가장 즐겨했는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했는지를 회상하면 자신의 생명력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나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이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5. 성경 구절의 치유력
화자는 손님과 대화를 한 후 성결의 한 구절을 묵상하도록 한다. 손님은 그 구절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 구절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은 그 구절을 통해 어떤 체험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의 관건은 성경 구절을 신학적으로, 심층심리학적으로 잘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절에 의해 어떤 체험을 하는가이다. 화자는 성경 구절이 손님에게 치유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을 종종 체험한다.
성경 구절은 우리가 억압하며 경직된 내면의 얼음 속에 갇힌 느낌들과 만나도록 할 수 있다.
성경은 거룩한 책이다. 성경은 성스러운 품격을 지니고 있다. 성스러움은 힘, 순수함, 치유하는 존재, 온전하게 하는 존재로 자신을 드러낸다. 성경은 다른 책들이 지니지 못한 고유한 힘을 지니고 있다. 화자는 묵상하도록 성경 한 구절을 제시할 때, 그 구절이 지닌 치유의 힘을 신뢰한다. 그런데 성경을 대할 때에는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지식을 넓히거나 신학적 연계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 구절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성경구절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것이고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 구절들은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삶의 역사를 발견하도록 열려 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벌써 건강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성경 구절을 묵상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치유의 이야기 안에서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이 예수님은 2천년 전에만 활동하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오늘날에도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기도 안에서, 고요 안에서, 미사 전례 안에서 나를 만나신다. 나의 상처들을 그분께 보여드리면, 그분은 그 상처들을 어루만지시고 하느님이 지니신 치유의 힘이 흘러들도록 하신다. 그리스도는 내면의 의사로 내 안에 계신다. 치유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이 내면의 의사와 만나도록 한다.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좋은 책들도 많이 읽어서 풍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성경은 단지 신심 깊은 말을 담은 책, 결국 부족함이 많은 책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손님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묻는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생명력을 체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수고를 힘들어 할 정도로 너무 편안하게 살아간다. 많은 독서를 통해 마음이 준비되어야 성경의 씨앗이 그 안에 자리 잡아 뿌리를 내리고 그 안에 치유의 힘을 전개할 수 있다.
마치는 말
이 강의록에서 화자는 영적 동반에 대해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몇 관점들을 서술했다. 영적 동반은 이데올로기를 벗겨드리고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안내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영적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 중 일부를 자기 자신과 하느님께 숨겨두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도 만나지 못한다. 많은 수의 종교인들이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다는 호소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에 항상 원인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다. 이들은 하느님께 오직 자신의 밝은 면만 보여 드린다. 하느님 앞에 내놓지 않고 감추어 둔 어두운 부분이 이들을 불구가 되게 하고 위축되게 하여 자기 자신과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치료(Therapie)는 이러한 억압을 그만두게 하고 진면목을 하느님 앞에 내놓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삶이 다시 피어나고 영적 길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출처 : 빈들
글쓴이 : 종달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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